까르띠에는 명품 브랜드로서 이름 못지않게 현대미술 재단으로도 잘 알려져있는 회사다. 이 전시는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말로만 듣던’ 까르띠에 현대미술 재단 소장품의 아시아 첫 투어 전시라는 점에서도 놓칠 수 없는 기회다.
까르띠에 재단은 후원 작가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고 작품 제작을 의뢰하면서, 기업의 이미지를 위해 잠깐 하는 후원이 아니라는 의지를 드러낸다. 파리 몽파르나스 지역 라스파일 대로에 있는 6층짜리 재단 건물은 현대미술의 특징에 맞게 전시에 따라 변환이 가능하고, 전시 기간동안 작가들은 이 건물 안에서 거주할 수 있다. 이렇게 작가와 재단이 긴밀한 관계를 가지는 것은 작가들에게도 좋지만, 재단의 소장품을 풍성하게 살찌운다는 점에서 재단에도 좋다.
무엇보다도 까르띠에 현대미술 재단은 1984년 처음 생겼을때부터 서구 작가들에게 치우치지 않은 국제적인 면을 지녔던 것이 남다르다. 콩고 출신의 쉐리 삼바(1956~), 중국 작가 황용핑(1954~) 등 이제는 유명해진 비서구 출신의 작가들에게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레지던시를 제공하고, 이후 개인전도 열어줬다. 이어 2000년에는 중국 작가 차이 구어치앙의 개인전, 2002년에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의 개인전, 2007년에는 한국 작가 이불의 개인전을 여는 등 세계 곳곳의 사회를 반영하는 동시대성이 짙은 작가들을 적극 후원했다. 이번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에는 이불이 2007년 까르띠에 재단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천지>(2007)가 전시되어 있다. 작품 제목은 백두산 정상의 화산 호수인 ‘천지’에서 따온 것이다. 전시장에서 우리 눈 앞에 보이는 것은 낡고 더러운 대형 욕조와 그 안에 가득 채워진 검은 잉크다. 작가는 이를 통해 한국 현대사의 모순적이고 암울한 면을 보여주려한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작가들 중 차이 구어치앙(1957~)은 까르띠에 재단에서1993년에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했고 2000년과 2016년 개인전을 했던,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모호한 경계: 시간/공간 프로젝트의 가장자리에서>(1991)와 <화이트 톤>(2016)을 볼 수 있다. 특히 <화이트 톤>(사진)은 바로 작년 까르띠에 재단에서 이 작가가 했던 개인전 <위대한 동물 오케스트라>에 나왔던 작품으로, 동굴속 벽화를 떠올리게 하는 거대한 동물 그림이다. 작가는 지구 상에 유일하게 남은 자연의 흔적을 찾아간 동물들의 모습을 상상했다. 맹수와 초식동물이 서로 싸우지 않으며, 함께 어울려 조용히 몸을 구부리고 지구에 남은 마지막 물을 한모금씩 마시고 있다. 화약에 불을 붙여 종이를 그을리는 아찔한 기법을 써서, 그림의 형상도 독특하거니와 그림이 품고 있는 분위기도 심각하다.
이 전시는 현대미술의 재미와 충격적인면, 상상을 초월하는 아이디어를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국가와 작품의 장르가 다양하다. 개념성 강한 작품부터 장식성이 돋보이는 작품까지,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컬렉션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볼 수있다. 2017년 8월 15일까지. (02)2124-8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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